2012년 3월 4일 일요일

11-1. 뒤르켐: 사회적 연대의 유형

1. 역사적 맥락에서 본 뒤르켐

뒤르켐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미 맑스와 베버가 두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에밀 뒤르켐 또한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청년 뒤르켐Durkeim은 기능주의자functionalist이면서 실증주의자positivist였지만 후일에는 인식론적 전환epistemological turn을 통하여 문화분석가cultural analyst가 되었다. 재미있게도 뒤르켐의 그러한 득특한 면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보통 저자들은 복합적인 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뒤르켐의 초기 작품들은 이미 문화주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다. 사실, 뒤르켐은 말년에 <종교생활의 기본 형태Elementary forms of a religious life>에서 자신의 사회학 방법론을 드라마틱하게 전환하였다. 이것은 뒤르켐 자신의 개인적인 사생활과도 많은 관련이 있다. 뒤르켐은 유대인 랍비가정에서 성장하였고 랍비가 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뒤르켐은 니체가 그랬던 것처럼 부모에 반항하고 아마도 무신론자가 되었던 것 같다. 그 후 뒤르켐은 더이상 활동적인 유대교 신자는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뒤르켐은 생애 후반기에 다시 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철학적이고 실존적 종교가로 변해갔다. 우리는 뒤르켐의 <노동분업Division of Labour in society>, 대작 <자살론Suicide>, 다소 어려운 <사회학적 방법론의 규칙Rules of Sociological Method>를 살펴볼 것이다. 잘알다시피, 뒤르켐은 미국 사회학계에 커다란 충격을 가하였다. 먼저 청년 뒤르켐은 기능주의자로서 대충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그 충격은 사회학에 한정되었다. 반면에 맑스와 베버는 역사, 경제, 정치 등 광범위하게 충격을 주었다. 사실, 진정으로 사회학자라고 할만한 사람은 에밀 뒤르켐 뿐이다. 베버는 생애 후반기에 사회학자라고 할 만한 평가를 받았다. 에밀 뒤르켐은 분명 자신을 사회학자로서 인식했던 것같다. 한편 사회학, 경제학, 그리고 정치학 사이의 학과경계disciplinary boundary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확실히 정해졌다. 실제로 사회학이 강단과목으로서 완성된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에밀 뒤르켐은 1858년 태어나서 1917년 타계하였다.

+ 뒤르켐의 생애
1858년 뒤르켐은 프랑스의 작은 도시인 Epinal에서 태어났다. 뒤르켐의 부친은 랍비였으므로 그 자신은 랍비가 될 예정이었다.

1879년 뒤르켐은 에꼴 노말 수페리에Ecole Normale Superieure에 입학하였다. 그 학교는 미국의 MIT같은 엘리트 학교였다. 뒤르켐은 이때 자신의 종교적 신앙을 포기하였다.

1887년부터 1902년까지 뒤르켐은 보르도Bordeaux 대학의 교수였다.

1893년 뒤르켐은 학위논문 <노동분업Division of labour in society>을 출간하였다. 이책은 기능주의적인 작품으로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향력이 있다.

1894년 드레퓌스 사건Dreyfus Affair으로 인하여 정치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드레퓌스 사건은 당시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유럽에서 대단한 사건이었다. 1894년 유대인 드레퓌스는 독일 스파이라는 명분으로 기소되고 수감되었다. 프랑스 지식인들은 이것을 반-유대적인anti-Semitic 판결이라고 보았으므로 들고일어났다. 당시 유명한 작가,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를 프랑스 일간신문에 기고하였다. 에밀 졸라는 <나는 고발한다J'accuse>에서 프랑스의 사법부를 반-유대주의적이라고 비난하였다. 뒤르켐도 그 판결에 항의하면서 다른 저명한 프랑스 지식인들과 합세하였다. 후일 드레퓌스는 결국 무죄로 판명되었고 나중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Knight of Legion of Honour를 받았다. 잠시나마 프랑스 반-유대주의는 해피엔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차 대전으로 나찌가 프랑스를 점령하자 상황은 뒤바뀌었다. 프랑스인들은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르게 반-유대주의에 그렇게 무죄innocent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많은 프랑스인들이 나찌에 협력하였기 때문이다.

1895년 뒤르케임은 <사회학적 방법의 규칙The rules of sociological method>를 출간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실증주의적인 방법론을 사용하였다.

1897년 뒤르켐은 <자살론Suicide>를 썼다. 이 책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자살론>은 최초로 시도된 경험적 사회과학empirical social science이었기 때문이다. <자살론>에서는 자살과 같은 매우 드물고 이상한 현상에도 사회적 결정인자social determinants가 적용될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조사되었다. 운좋게도 자살률이 높은 나라에서도 자살은 드문 현상이다. 그러나 뒤르켐은 매우 조심스런 경헙적 분석들을 제시하면서 충격적인 이론을 도출해낼 수 있었다.

1902년 뒤르켐은 파리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파리대학은 에꼴 노말 수페리에 만큼 유명하지 안았다.

1915년 뒤르켐은 자신의 가장 성공작인 <종교생할의 기본 형태The elementary forms of religious life>를 발표하였다. 뒤르켐은 이 작품에서 자신의 정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1917년 뒤르켐은 파리에서 타계하였다.

+  <노동분업Division of labour in society>의 주요 내용
이 책 <노동분업>은 실제로 뒤르켐의 박사학위 논문이었다. 재미있게도, 보통 학자들은 학위논문이 자신의 유일한 책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뒤르켐은 논문이외에도 좋은 책들을 많이 발간하였다. 뒤르켐은 몽테스키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사실 뒤르켐의 이론은 매우 프랑적인 몽테스키와 루소에 뿌리박고 있다. 뒤르켐은 루소도 동경하였지만 몽테스키외야말로 진정한 영감이었다. 뒤르켐은 몽테스키외가 했던 것처럼 사회발전을 측량하기 위한 도구로서 법을 이용하였다. 뒤르켐은 법과 법제도를 이용하여 노동분업의 발전단계와 사회진화를 전개하였다. 알다시피 맑스는 희소한 경제적 자원을 둘러싼 경제적 갈등과 투쟁으로서 역사발전단계 이론을 전개하였다. 베버와 니체는 권력을 향한 투쟁을 주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뒤르켐의 포인트는 사회적 연대social solidarity에 있었다. 재미있게도, 맑스와 베버는 갈등 이론가들이다. 맑스와 베버는 무엇이 사회를 붕괴시키는지를 분석하였다. 반면에 뒤르켐은 무엇이 사회를 통합시키고 우리들을 결집시키는지, 또 왜 사회는 분열되지 않는지를 분석하였다. 뒤르켐은 <노동분업>에서 연대 유형type of solidarity을 두가지로 분명하게 나누었다. 그것은 기계적mechanical 연대와 유기적organic 연대이다. 우리는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에 대하여 장황하게 다룰 것이다. 이 연대 유형은 역사발전의 정도를 가늠하는 사회진화의 유형학typology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맑스의 생산양식, 즉 노예제로부터 봉건제 그리고 자본제로 전환해가는 방법론에 익숙해졌다. 또 우리는 베버의 전통적 지배와 법-합리적 지배의 방법론도 살펴보았다. 뒤르켐의 대안alternative적 방법론은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에 있다. 어떤 면에서 베버의 전통적 지배는 뒤르켐의  기계적 유대에 해당한다. 또 맑스의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들pre-capitalist formations은 기계적 유대에 해당할 수 있다.  그리고 법-합리적 지배의 현대 자본주의는 유기적 연대에 해당할 수 있다. 한편, 뒤르켐은 노동분업의 병리적 형태들pathological forms을 구별하고 정의하면서 이러한 병리현상을 아노미anomie라고 불렀다. 뒤르켐의 아노미 아이디어는 맑스의 소외 아이디어나 베버의 탈마법화disenchantment아이디어와 유사하다. 물론 그것들 사이에는 중요한 치이점 있다.

+ <자살론Suicide>
뒤르켐은 <자살론 >에서 최초로 엄밀한 경험적 방법을 통하여 사회현상을 분석하였다. 개인의 행동은 사회와 관계를 갖고있는가. 당신은 목숨을 포기하느냐, 마느냐와 같은 현상이 정말로 당힌자신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뒤르켐은 개인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는 사적인 행동에서도 예측 가능성과 사회적 결정인자social determinants가 있다고 말하였다. 뒤르켐은 자살의 유형을 아노미적anomic 자살, 이타적altruistic 자살, 이기적egoistic 자살, 운명적fatalistic로.구별하였다.

+ 뒤르켐의 방법론
뒤르켐은 몽테스키외와 같이 방법론적 집단주의자methodological collectivist였다. 홉스, 로크, 존 스튜어트 밀 그리고 맑스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와 방법론적 집단주의 사이의 중도halfway에 놓여있다. 뒤르켐은 혁명적인 의식이론가revolutionary consciousness로서 방법론적 집단주의자였다. 사실, 뒤르켐의 '집단적 양심collective conscience' 개념은 맑스의 계급 의식class consciousness 아이디어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 맑스의 계급 의식은 근로자들 각 개인들의 의식의 총합sum total이 아니었다. 그러나 맑스는 착취이론theory of exploitation에서 애덤 스미스나 존 스튜어트 밀과 거의 같은 선상에 있었다. 맑스는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 개인self-interested rational individuals을 가정하여 착취이론을 전개하였다. 베버는 이들과 같은 선상에 있느가. 이것은 어려운 문제이지만 확실히 베버는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사이의 중도자였다. 그러나 베버는 생애 후반기에 방법론적 개인주의자로 전환하였다. 반면에 뒤르켐은 일관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방법론적 집단주의자였다. 또 뒤르켐은 사회적 사실social facts 개념을 주장하면서 사회적 사실들은 엄밀한 경험적 방법론에 의하여 관찰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면에서 뒤르켐은 실증주의자였다.

2. <노동분업>의 주요 내용

뒤르켐은 <노동분업>에서 어떤 식으로 논증해 나아갔는가.  뒤르켐은 왜 하필 법laws으로부터 출발하여 사회 분석을 시도하였는가. 뒤르켐은 어떻게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를 나누었는가. 이것이 <노동분업>의 포인트이다. 뒤르켐은 방법론적 집단주의자로서 개인보다는 사회 탐구에 역점을 두었다. 뒤르켐은 몽테스키외와 같이 법은 집단 현상collective phenomenon이라고 믿었다. 뒤르켐에 따르면 법은 개인적인 견해나 의견과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탐구되고 제정된다. 뒤르켐이 조어terminology한 '집단양심collective conscience' 은 개인 의식individual consciousness을 초월하는 상위개념이다. <노동분업>의 주요 포인트는 연대solidarity에 있다. 뒤르켐은 사회통합인자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개인은 제각기 다양하므로 사회는 분열되어야 마땅하다. <노동분업>은 산업화industrialization와 도시화urbanization가 급격하게 진행되고있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작품이다. 당시 사람들은 전통적인 촌락 공동체의 농부의 신분으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도시의 산업 노동자가 되기위하여 대도시로 밀려들었다. 전통적 질서가  더이상 개인들을 구속하지 못한다면 사회질서는 곧 붕괴될 것인가.  아것이 뒤르켕이 파악하고자 했던 포인트이다. 현대산업사회에서 개인은 무엇에 의하여 통합되는가. 뒤르켐은 그것을 연대solidarity에서 찾았다. 뒤르켐에 따르면 이 연대를 창조하는 것은 집단의식이다. 이 집단의식의 근본적인 아이디어는 루소의 일반의지general will 아이디어에서 유추된 것이었다. 이 뒤르켐의 집단의식은 맑스의 계급의식으로부터도 유추될 수 있다. 따라서 뒤르켐의 집단의식은 개인의식들의 총합sum total으로서의 의식이 아니다. 그 집단의식은 각 개인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하면서 사회집단을 생성시킨 공통된 기준norms, 신념beliefs, 가치values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이 집단의식은 이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것이다. 뒤르켐에 따르면 이 집단의식은 역사를 통틀어 통시적으로 존재하면서 법에 표상되었다. 따라서 법의 본성은 집단의식이라는 것이다. 물론 법은 시간에 따라 변해가지만 그 변화의 흐름은 매우 느리고 몇 세대가 걸린다. 뒤르켐의 아이디어는 매우 프랑스적이었다. 프랑스인들은 방법론적 집단주의자 성격이 매우 강하다. 반면에 앵글로-색슨Anglo-Saxons인들은 방법론적 개인주의자 성격이 강하다고 보겠다. 프랑스인들은 독일인들과는 다르게 매우 과학적이다. 왜냐하면 프랑스인들은 매우 과학자적인 속성을 갖고있기 때문이다. 독일어에는 '과학적scientifique' 이란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인들이 과학자'Wissenschaftler' 라고 말할때 Wissen이란 지식knowledge을 말한다. 따라서 독일어로 과학Science이란 모든 지식을 포함한 것이므로 매우 폭넒은 개념인 것이다. 프랑스어나 영어에서의 과학은 자연과학 유형들 중의 특정한 과학을 말하는 것이다. 뒤르켐은 시회학이 자연과학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뒤르켐은 객관적 데이타를 통한 엄밀한 사회분석을 시도하였으므로 충분히 과학적이었다고 보겠다. 독일어의 과학자Wissenschaftler는 아이디어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포함한다. 독일어의 과학은 훨씬 더 넓은 개념인 것이다. 따라서 자연과학자 뿐만아니라 인문학humanities과 이이디어의 역사를 연구하는 자도 과학자이다. 홉스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글을 쓰는 자는 과학자Wissenschaflers이다. 보통, 아이디어의 역사를 연구하는 자를  가리켜 과학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들에 대한 개념적으로 확실한 용어는  인문학자humanities자이다. 그러면 사회학은 과학인가. 실제로 과학자들은 사회학자들에게 묻기를 "사회과학이라고? 사회과학은 무엇이냐? 당신이 말하는 과학은 무엇이냐?" 라고 말한다. 경제학 전공자들은 경제학이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칠판 가득 방정식을 채움으로써 경제학이 과학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과학자는 안심relax할 수 있다. 보다시피, 나는 칠판에서 단 하나의 방정식도 써놓지 않았다. 사회학은 정말로 과학인가. 어쨌든 뒤르켐은 엄밀한 분석을 시도했다는 면에서 매우 과학적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뒤르켐의 집단의식은 사회의 평균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신념과 감정들의 총합totality of beliefs and sentiments과 관련되어있다는 것은 이미 언급하였다. 뒤르켐에 따르면 집단의식은 스스로 고유의 생명력a life of its own을 지닌 결정적 시스템a determinate system을 창조한다. 이것이 과학자로서의 뒤르켐이 말하는 집단의식의 과학적 기능이다. 집단의식은 분명 개인의식consciousness of individuals과는 다른 것으로서 집단의식은 개인 안에서 실현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뒤르켐은 개인들에게관습과 가치customs and values를 질문하고 이 자료들을 모아서 패턴을 분석하는 조사연구방법을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뒤르켐은 이런 식으로 조사연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뒤르켐은 이런 조사연구를 찬성했으리라 본다. 물론 뒤르켐은 이러한 개방적 조사연구 가능성으로 인하여 미국의 1930년대와 40년대 그리고 50년대의 영향력있는 사회학자로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미국의 사회학은 매우 실증주의positivist적이고 경험적empirical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단양심(의식)을 가장 명백하게 표상하는 것은 법과 아마도 언어이다.

3. 전-현대 사회pre-modern society와 현대 사회의 법 차이점

전-현대pre-modern사회의 법과 현대 사회의 법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점이 존재한다. 이제 뒤르켐은 기계적연대와 유기적 연대를 구별하여 주장하였다.

+ 전-현대 사회의 법: 억압적repressive, 형사적penal
뒤르켐은 전-현대pre-modern 사회에 존재했던 법은 주로 억압적이고 형벌적이라고 하였다. 전-현대 사회의 법의 목적은 악행evil behaviour를 처벌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악행이란 무엇인가. 당시 사람들은 무언의 동의로서 악행을 결정하기도 하였다. 전-현대사회의 법은 엄하게 개인을 처벌함으로써 공격적 행동의 재발을 방지하였다. 이것이 전-현대 사회의 법 제도legal system 였다.

+ 현대 사회의 법: 보상적restitutive, 민사적civil
그러나 현대modern 사회의 법 제도는 매우 다르다. 현대 사회의 법 제도는 게약contract에 기초를 두고 있다. 왜냐하면 현대 법 제도의 핵심은 게약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대 법이 형법전penal code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형법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새로운 계약법이 생성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현대의 계약법contractual law은 그 성격이 보상적restitutive 이다. 왜냐하면 계약법은 더이상 악행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계약을 위반함으로써 초래된 손해를 타 당사자에게 단지 배상한다. 뒤르켐에 따르면 계약법은 현대시대modernity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법이다. 아마도 맑스는 이 계악법는 자본주의와 함께 출현한 새로운 법 제도라고 말했을 것이다. 또 베버는 계약법은 법-합리적 지배의 핵심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 왜 법이 문제인가
뒤르켐은 왜 법을 조사했는가. 뒤르켐에 따르면 법제도는 확실히 집단의식을 표상하는 최선의 유일한 근거 measure이다. 잘알다시피, 집단의식은 매우 업밀하고 객관적으로 조사되어야한다. 법률서적과 법 실무legal practice, 재판 기록, 법 제정 , 법 실행에 관한 조사는 대단한 엄밀성을 요구한다. 예를들어, 계약법이 정말로 새로운 형태의 법인지를 조사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법 역사에 관한 자료들은 계약법이 정확히 언제 등장했는지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년 베버는 자신의 법학박사 학위논문에서 계약법의 등장을 중세말 이탈리아에서 찾았다. 재미있게도, 뒤르켐과 베버는 동시대헤 살면서도 서로 백안시했다. 뒤르켐과 베버는 같은 분야에서 있었지만 상대의 저작을 절대로 인용하지 않았다. 당시 뒤르켐과 베버는 모두 프랑스어와 독일어 구사하였고 학계의 거인들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많은 면에서 너무 가까웠고 또 서로 인용하기에는 너무 심한 경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뒤르켐은 베버의 부인인 마리안느 베버의 책을 리뷰했었다. 그러나 뒤르켐은 베버의 책에 대하여는 결코 그런적이 없었다. 당시 마리안느 베버의 결혼법에 관한 책이 뒤르켐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느지도 모르겠다. 베버는 종교에 대한 책을 쓰고 있었는데 종교는 뒤르켐의 중요 관심사였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뒤르켐과 베버는 서로 외면했다.

4.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mechanical solidarity and organic solidarity
뒤르켐은 두 가지 연대유형을 제안하였다. 그것은 전-현대사회의 기계적 연대와 현대사회의 유기적 연대이다.

+ 기계적 연대
기계적 연대는 전형적인 전-현대 사회의 연대유형이다. 기계적 연대는 분명 현대 사회의 연대유형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자. 기계적연대는 유기적연대에 선행한다. 나는 45년 전에 뒤르켐을 읽으면서 처음 2 , 3년 동안 실수를 했었다. 나는 유기적 연대가 전-현대사회의 전형적인 연대유헝인 것으로 착각했었다. 기계적 연대는 부분들의 유사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 따라서 기게적 연대는 형사법을 창조할 수 있었다. 형사법은 당사자 개인의 특수성을 구별을 하지않고 그룹의 동일성sameness of the group을 가정한다. 잘알다시피, 동일한 그룹 안에서 개인들은 서로 유사하다. 이것이 뒤르켐의 기계적 연대의 포인트이다. 반면에 유기적 유대는 사회적 개인의 차이성에 기초한다. 유기적 연대는 높은 수준의 사회적 노동분업에 의하여 창조된다. 뒤르켐에 따르면  '유기적organic' 이란 생물학적으로 유추analogy된 개념이다. 뒤르켐은 현대사회를 인간 육체에비유했던 것이다. 인간 육체의 장기들organs 사이에는 기능적인 차이점이 있다. 이것이 바로 유기적 연대의 포인트이다. 알다시피, 심장은 폐와는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폐는 심장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이것이 유기적 연대이다. 사회는 마치 생물체organism 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역사 초기에 사회는 부분이 상실된 기계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회는 기계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즉, 그 사회는 간단한 기계였다. 이것이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뒤르켐은 기계적연대와 유기적 연대를 구별하여 사회의 특성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재미있게도, 뒤르켐의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는 베버의 전통적 지배와 법-합리적 지배 개념과 매우 유사하다. 당시 베버는 뒤르켐의 기계적 연대를 당대사회에도 적용하였다. 기계적 연대는 당대 사회에도 적용될 수 있는가. 베버는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를 결혼 상대자를 찾는 지표로 삼았다. 데이트 상대로는 누가 적당하고, 결혼 상대자로는 누가 적당한가. 때때로 우리는 자기자신과 유사한 상대방을 찾고자 한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당신들은 서로 오누이brother sister같다.''고 할 때가 있다. 만약 게이gay라면 "당신들은 형제같다." 라거나 " 당신들은 자매같다." 라고 할 수도 있다. 연인들은 서로 같아 보이거나 닮아 보일 수 있다. 보통, 우리는 지속적인 관계를 위하여 파트너를 고른다. 나는 나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똑같이 좋아하는  파트너를 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과 정반대일 수도 있다. 즉, 파트너는 유기적 연대의 논리에 구해질 수도 있다. 이릍테면, 당신은 자신을 보완해줄 파트너를 찾을 수도 있다. 나는 계산을 잘 못하므로 회계에 능한 파트너를 구할 수 있다. 일상에서, 우리는 자신을 보완해줄 파트너를 찾게된다. 이것은 현대사회가 높은 수준의 노동분업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뒤르켐에 따르면 노동분업은 마치 육체의 장기의 기능과 같은 것으로서 개인은 자기의 일을 수행하면서 또 사회에 통합된다. 따라서 개인들은 서로의 유사성 보다는 차이성에 기초하여 서로를 보완하고 필요로 한다. 사실, 계약법은 그러한 유기적 연대의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뒤르켐은 사회가 기계적 연대로부터 유기적 연대로 이전transition하는 데는 많은 혼란이 뒤따라온다고 하였다. 이러한 혼란이 아노미anomie이다. 사회가 기계적 연대로부터 유기적 연대로 이전하는 과정, 즉 전통적 사회로부터 현대 사회로 이전하는 과정에서 우리 개인들은 가치 시스템의 붕괴를 경험하면서 아노미 상황에 이르게된다.






<참고문헌>

원문번역, 동영상
Szelenyi, Ivan, Founda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 Open Yale Course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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