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6일 화요일

11-2. 뒤르켐: 아노미 이론

1. <노동분업labour division in society> 리뷰

아노미 개념은 매우 간단한 것처럼 보인다. 아노미anomie란 기준상실 상태state of normlessness를 의미한다. 따라서 아노미는 쉽게 해석될 것도 같다. 그러나 그와는 정반대로 아노미는 꽤 어려운 문제이다. 사실, 뒤르켐은 현대 시장경제 사회에서 생성되는 비정상abnomalities에 대한 복잡한 개념을 갖고 있었다. 본론에 앞서, 뒤르켐의 <노동분업labour division in society>을 재검토해 보자. 뒤르켐은 집단양심collective conscience 아이디어에서 출발하면서, 왜 법이 집단양심의 지표가 되는지 설명하였다. 뒤르켐은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를 구별하면서도 그렇게 많은 차이점을 던져주지는 못했다. 전-현대사회pre-modern society와 현대사회룰 가르는 중대한 기준은 노동분업이었다. 뒤르켐에 따르면 노동분업은 역사를 견인하고 끌고가는 인자였다. 이런 면에서, 뒤르켐은 애덤 스미스로부터 지대한 영감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알다시피, 애덤 스미스는 인간사회의 진화를 노동분업의 역사로 보았다. 애덤 스미스 사회를 기간적으로 수렵, 채집, 목축, 그리고 농업과 상업으로 구별하였다. 반면에 뒤르켐은 사회를 기계적 연대와 유기적 연대로 구별하였다. 물론 기켸적 연대 사회와 유기적 연대 사회는 각각 상이한 법 제도를 갖추고 있지만 근본적인 차이점은 노동분업에 있었다. 기계적 연대사회는 구성원들의 유사성에 기초하여 형성되고 노동분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유기적 연대사회는 대단한 양적 노동 분엽을 이룩한다. 그 이유는 사회 구성원들의 비유사성이 양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럼, 그러한 높은 수준의 노동분업과 또 다양하게 역동하는 사회에서, 도대체 연대solidarity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애덤 스미스의 노동분업 이론은 뒤르켐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맑스 또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애덤 스미스의 노동분업 이론을 이용하여 사회를 기간적periodicization 구별했었다. 따라서 맑스 또한 애담 스미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뒤르켐의 연대 유형 아이디어도 애덤 스미스의 노동분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뒤르켐은 몽테스키외로부터도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사실, 뒤르켐은 경험적으로 관찰가능한 집단 양심의 지표로서 법laws을 상정하였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몽테스키외의 아이디어와 관련되어있다. 뒤르켐은 몽테스키외로부터 한가지 더 빌려온 것이 있었다. 그것은 사회제도와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에 관한 이론이다. 뒤르켐은 사회와 환경사이의 관계를 좀더 섬세하게 사회적 연대와 사회의 노동분업 사이의 관계로서 이해하였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뒤르켐의 결점neglect이다. 왜냐하면 환경 문제와 환경 조사는 경제학과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의 중점과제여야 했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는 특히, 정치학과 사회학 그리고 인류학에서 그 당위성 만큼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못했다. 특히, 환경 연구는 환경 사회운동environmental social movements에 한하여 너무 좁게 범주화된 면이 없지않다. 한편 뒤르켐은 새 접근법을 시도하면서 사회연구가social researcher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많은 경제학자, 정치학자, 사회학자, 인류학자들은 뒤르켐으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았다. 그럼, 새 접근법이란 무엇인가. 뒤르켐은 <노동 분업>의 핵심 아이디어인 생태계ecosystem를 제안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물리적 환경, 인구의 규모와 노동분업 그리고 기술적인 사회유형, 즉 사회적 연대 사이에는 상호 관계가 있다. 사실. 이 생태계 아이다어는 이제까지 많이 간과되어왔던 것이다. 생태계 아이디어는 바로 우리는 환경을 갖고 있고, 인구를 갖고 있고, 기술을 갖고 있고 또 사회조직을 갖고 있다는 데 기초한다. 이 네가지, 즉 환경, 인구, 기술, 사회조직은 제도system를 구성하고 서로 상호작용한다. 뒤르켐은 이 전체를 통한 제도whole system를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기술을 보라. 오늘날, 기술technology은 노동분업과 많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기술은 생태계ecosystem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뒤르켐은 기술을 생태계라고 부르지는 않았지만 오늘날 환경연구가들은 이것을 생태계라고 부른다. 오늘날 사회학자들이 환경문제를 생태계로서 보고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캘리포니아의 남부를 생각해 보라.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남부 캘리포니아는 매우 건조한 기후dry climate였으므로 물 부족이 심각하였다. 로스 엔젤레스 분지basin는 20,000명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었다. 이 환경에 정착한 약 20,000명의 사람들은 매우 기본적인 기술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노동분업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보다시피, 인구의 규모는 기술과 환경에 대단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그 사회는 기계적 연대로 조직되었다. 그럼, 오늘날 로스엔젤레스 분지basin의 수리hydraulic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놀랍게도, 로스엔젤레스는 조만간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20,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분지에 2천만 명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기술을 사용하여 공기를 최대한 적게 오염시키지만 여름철 로스엔젤레스의 중심가down town는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게다가 그 사회는 유기적 연대로 작동되고 있으므로 환경은 곧 망가질 수 있게되었다. 고맙다. 우리는 아주 멋지고 줄기차게 생태계를 망치고 있으므로 곧 로스엔젤레스 분지는 황폐화가 될 것이다. 실제로, 뒤르켐이 주장한 생태계ecosystem아이디어는 이런 식으로 상호작용하고 있다. 뒤르켐의 생태계 아이디어는 사회조직의 문제, 인구 통계학적 문제, 기술적 이슈와 평화로운 실존과 이것들이 상호작용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엄밀한 과학적 틀framework을 제공한다. 생태계는 뒤르켐의 노동분업 이론의 핵심 포인트이다.

2. 아노미: 노동분업의 비정상적인 결과

뒤르켐에 따르면 아노미는 노동분업의 비정상적인 결과 중에 하나이다. 아노미는 비정상 또는 사회 병리social pathologies에 관한 아이디어로서 뒤르켐의 독특한 개념이다. 뒤르켐의 아노미 이론은 대단히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사회의 비정상적 상태와 정상적 상태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회연구가는 건강한 사회적 조건들을 가정하게 되는데, 병리pathology란 이러한 가정에서 판단되는 것이다. 아노미는 뒤르켐 초기의 기능주의로부터 나온 것이다. 뒤르켐은 생물학자는 아니었지만 생물학의 영향을 대단히 많이 받았다. 이미 지적했듯이, 유기적 연대는 인간의 육체로 비유metaphor될 수 있다. 인간 육체의 각 장기들은 서로 의존하면서 재생산을 수행한다. 따라서 병리pathology란 용어는 의학medical sciences으로부터도 빌려온 것이다. 분명, 사회는 병리적인 특성들을 가질 수 있고 또 비정상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사회연구가들은 비정상의 본질과 병리학의 본질을 정의 내린다. 이것은 적어도 사회학자들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학자는 적어도 가치 중립적인 분석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또 사회학자들은 사회 현상을 명확하게 분류하고자 시도하지도 않는다. 사회학자들은 규정화labeling 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범죄 또는 비정상으로서 규정되는 이유는 그것들이 아마도 사회에서 이상한unusual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회에서 비정상적인 행동이 다른 사회에서는 실제로 정상적인 행동일 수 있다. 따라서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을 규정하는 일은 매우 신중해야한다. 고대 사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회와 문화에서는 아주 최근까지도 게이gay가 되는 것은 일종의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보여졌다. 그러나 현재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렇게 생각한다. 특히, 미국에서는 더 그렇다. 따라서 섹스 활동은 시대times에 따라서 정상이거나 비정상이 될 수 있다. 사실, 사회학자들의 임무는 정상적인 섹스활동과 비정상적인 섹스활동을 분류하여 개념화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학자들이 최선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왜 사람들은 어떤 섹스 행위를 정상이라고 부르고 다른 섹스 행위를 비정상이라고 부르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왜 특정한 섹스 행위는 용인하면서도 다른 섹스행위는 용인하지 못하는 사회가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뒤르켐을 이은 사회학자들이 연구해야하는 것이다. 뒤르켐은 비정상이 어떻게 뱔전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미 지적했듯이, 뒤르켐은 사회가 기계적 연대에서 유기적 연대로 이전할때 병리가 등장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 뒤르켐은 병리를 사회적 맥락에서 파악하였다. 당시 1890년대 말 1900년대 초, 뒤르켐은 보르도에서 파리로 이동하는 중에 신Sin에서 온갖 사회 병리학적 징표들을 보게되었다. 알콜중독과 노숙자homelessness, 매춘과 절도 등 여러 범죄들은 2-30년 전의 프랑스 농촌rural에서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매우 드물었던 현상이었다. 뒤르켐은 비정상적이거나 병리적으로 보여지는 거대한 현상에 직면하면서 그것은 기게적 유대에서 유기적 연대로의 이전이 빚어낸 병리현상이라고 보았다. 병리는 두가지 상이한 뿌리를 갖고있다. 첫째, 병리는 일반적 의미로서 규범의 부재absence of rules이다. 이것이 바로 아노미anomie이다. 둘째, 재미있게도, 병리pathologies는 실제로 고도로 발전된 노동분업에서 과잉규제overregulation로 인하여도 나올 수 있다. 이것은 매우 놀랄만한 점이다. 보통, 우리는 맑스의 소외 이론과 뒤르켐의 아노미이론을 대립counterimpose시켜서 본다. 뒤르켐은 사회 규제가 부족하다고 불평한다. 반면에 맑스는 사회 규제가 너무 많다고 불평한다. 사실, 맑스와 뒤르켐은 서로 그렇게 많은 차이는 없다. 뒤르켐은 맑스의 소외 개념에 대해서 매우 민감했다. 뒤르켐은 그 소외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것과 근접한 이론을 전개하였다.

+ 규범의 부재로 인한 병리
재미있게도, 노동분업은 연대의 근거source of solidarity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반-직관적counter-intuitive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연대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공동체에서 비교적 유사한 구성원들이 동일한 가치, 제도, 기준을 공유하면서 연대 감정을 통하여 형성된다. 그러나 도시 구성원들은 매우 다양하고 시장에서 경쟁하면서 이방인처럼 자신들의 가치관만 고집한다. 그들은 때때로 공공의 가치조차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도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냥 촌락을 떠나서 거대하고 죄많은sinful도시에 들어왔으나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상태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들은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그들은 절도가 괜찮다고 생각하거나 몸을 파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므로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이 잡혀가지 않았으므로 자신들도 잡혀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러한 비정상적인 행동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도시 환경의 비유사성 속에서 그 사람들은 연대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정관념stereotypes은 사람들은 도시산업사회에서 연대를 이룰 수 없다는 선입견이다. 고정관념이란 원래가 그렇다. 이를테면, 뉴욕에서는 빈민들이 길거리에서 죽어가고, 행인들은 죽어가는 사람 위를 넘어간다고 생각한다. 뉴욕 사람들은 너무 매정해서 사람이 거리에서 죽어가더라도 자기 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 타임스 광장Times Square에 어떤 사람이 아파서 쓰러져있다면 행인들은 그에게로 달려가서 상태가 어떤지를 묻는 것이 보통이다. 어쨌든 고정관념이라는 것은 있기 마련이다. 이것이 도시에 괸한 고정관념이다. 도시사회의 익명성anonymous, 다양성, 고도의 노동분업성 속에서 실제로 연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은 수수께끼이다.

+ 병리적 형태들

+ 1: 위기와 계급투쟁
재미있게도, 뒤르켐의 병리 아이디어는 맑스와 매우 유사하다. 먼저, 제도 내에서 위기가 찾아온다. 이어서 계급투쟁이 점차 증가하게 된다. 이 계급 투쟁class conflict은 병리적이다. 이것이 뒤르켐의 포인트이다.

+ 2: 노동 분업의 분화와 과잉특화
이것은 맑스 후반기와 다르지 않다. 노동 분업은 지나치게 과잉될 수 있고, 너무 심한 노동 분업은 병리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 3: 규제 결핍, 아노미
이것은 뒤르켐의 독특한 점이다. 병리는 규범의 결핍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 뒤르켐은 이것을 아노미라고 불렀다.

+ 노동분업은 연대의 근거이다.
뒤르켐에 따르면 대체로, 노동분업은 사회적 연대를 창조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우리는 노동분업이 사회적 연대를 창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사회적 연대가 병리 현상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라고 하였다. 또 뒤르켐은 의학적 비유를 하면서 "병리학은 생리학을 보조ancillary한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병리학은 사회 생리학physiology of society로부터 출발한다. 보통, 병리학과 생리학은 동일하게 병리적 현상을 연구한다. 이것이 병리에 관한 뒤르켐의 포인트이다. 어떤 면에서 뒤르켐의 노동분업은 병리 문제에 대한 독특한 방법론으로 보인다.

재검토

+ 병리 1: 위기와 계급 투쟁
계급 투쟁은 병리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가. 뒤르켐은 말하기를 "노동이 점차적으로 분화되어감에 따라서 상업적 위기, 파산, 그리고 노동과 자본사이의 적대가 발생하게 되고, 이러한 갈등은 계속해서 더 자주 일어나게 된다."고 하였다. 또 뒤르켐은 말하기를 "전통적 사회의 기계적 연대 속에서 계급갈등은 드물고 이상한 것이었다." 라고 하였다. 알다시피, 오늘날 계급갈등은 그렇게 이상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뒤르켐은 근로계급working class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말하기를 "근로계급의 일부는 자신의 지위status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착취로 인한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고도로 분화된 노동분업은 타자의 부재in absence of others로 인하여 심한 계급갈등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계급투쟁은 고도의 노동분업으로 인한 병리 현상이다.

+ 병리 2: 노동분업은 분화되고 과잉특화된다.
뒤르켐은 맑스의 <파리 원고Paris Manuscript> 접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맑스의 <파리 원고>는 뒤르켐이 타계한지 14년이 지나서야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매우 재미있게도, 뒤르켐은 말하기를 "개인은 지나친 노동분업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고유한 활동 안으로 고립되어갈 것이다. 그 개인은 더이상 동일한 목표를 위하여 협력하는 조력자를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그는 공동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잊어버릴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것은 정말 놀랍다. 뒤르켐은 <파리 원고Paris Manuscripts>가 있는지 조차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맑스의 소외론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다. 분명, 이것은 맑스의 소외론에 가까운 것이지만 헤겔의 소외론과 가까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뒤르켐은 소외 병리의 뿌리를 과잉된 노동분업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시장, 과도한 경쟁이 병리현상을 초래한 것이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점이다. 그런데 뒤르켐은 대수롭지 않게 이 점을 종종 건너 뛰었다.

+ 병리 3: 규제의 결핍: 아노미
아노미는 매우 중요하고 독특한 뒤르켐의 업적이다. 뒤르켐에 따르면 병리는 규제의 결핌lack of regulation으로부터 초래될 수 있다. 알다시피, 규제의 결핍이란 아노미를 말한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사회생활에 반드시 투쟁이 없을 필요는 없다." 라고 하였다. 투쟁은 그 자체로in itself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유기적 연대의 역할은 경쟁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완화moderate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애덤 스미를 상기시킨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공감설sympathetic theory of human nature을 주장하면서 무제한적인 경쟁과 이기적인 행동은 옳지않으므로 우리는 타자에 대하여 공감할 수 있어야 하고 타자로부터 인정받고자 투쟁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이 뒤르켐과 애덤 스미스 사이의 유사한 점이다. 뒤르켐은 매우 중요하게 말하기를 "노동분업의 발전은 경쟁완화를 위한 규제화regulatory process를 정립하지 못했고 또 노동분업의 분화는 경쟁완화 규제와 관련이 없다."고 말하였다. 뒤르켐의 포인트는 규제가 불충분하다는 것으로서, 규제가 아예 없든지 규제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노동 분업이 연대를 창조하지 못하는 것은 인체 장기organs들이 서로 규제regulated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아노미이다." 라고 하였다. 뒤르켐의 포인트는 사회적 체질social context이었다. 사회적 체질로 볼 때 아노미는 경험적인 좌표점empirical reference point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농촌의 젊은이가 기차를 타고 가르 라자Gare Lazare, Saint Lazare에서 내린다. 그리고나서 그들은 파리의 거리를 활보한다. 이 죄로 가득찬 파리에서 그들은 곧 자신들을 잃어버리면서 촌락의 가정에서 배웠던 가치시스템이 갑자기 붕괴되는 것을 보게된다. 그들은 촌락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사이좋게 지냈고 또 공동체의 법을 위반하면 그 즉시 처벌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잘못을 저지르면 소문gossip이 순식간에 퍼질 것이고 엄마와 아빠는 아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정확히 알았다. 그러나 이제 아들은 파리에 있다. 누구도 아들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없다. 아들도 타인들에 대하여 무관심하다. 도시는 분명 자유의 세계처럼 보일지 모른다. 아들은 이제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촌락에서라면 아들이 파트너와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왜냐하면 소문이 곧 아들의 약혼자와 그녀의 부모에게 즉시 전달되고 스캔달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아들은 불미흐Boul'Mich 거리를 거닐면서 뭐든지 할 수 있다. 아들은 어느 누구의 손도 잡을 수 있고 누군가와 키스할 수도 있다. 아무도 아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이것이 문제이다. 사람들은 사회 속에 들어가서 그 속에서 자신을 상실lost한다. 이것이 아노미이다.

+ 아노미 개념
그럼, 아노미의 개념을 살펴보자. 뒤르켐의 아노미 개념과 맑스의 소외개념 사이에는 많은 유사성이 있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노동 분업은 근로자를 기계의 역할로 축소시킬지도 모른다. 그 근로자는 어느 작업단게에서 자신이 필요한지 의식하지 못하고 또 그것을 자신의 목표와 연계시키지 못한다. 매일 그는 단순하고 똑같은 움직임을 반복하지만 그것에 대한 어떤 이해도 갖고있지 못하다." 고 하였다. 얼마나 재미있는 말인가. 기준과 가치의 결핍은 곧 가치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온다. 이것이 뒤르켐의 포인트이다. 그럼, 아노미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아노미문제는 기준 시스템의 교정을 통하여 가치 시스템을 변화시킴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아노미는 노동 분업의 필연적인 결과는 아니다." 라고 하였다. 뒤르켐의 포인트는 아노미는 노동 분업의 강제와 노동분업의 과잉에서 나온다는데 있다. 집단양심collective conscience의 속성 중에는 절제moderate도 있다. 절제 노동분업의 경쟁과 관련된 속성이다. 사실, 노동 분업화 된 문화적, 법적, 도덕적, 윤리적 장치들이 적절하게 제자리를 찾는다면 노동분업은 아노미를 생산하지 않을 것이다. 아노미는 그런 적절한 장치들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할 것이다. 재미있게도, 뒤르켐은 말하기를 "나를 로맨틱하게 보지 말라. 소년소녀들이 기차를 타고 파리에서 하차할 수밖에 없는 그런 촌락 공동체는 이상화되어서는 안된다." 고 하였다. 또 뒤르켐은 말하기를 "나는 소년소녀들을 다시 촌락 공동체로 되돌려 보내고 싶지않다. 나는 유기적 연대에서 기계적 연대로 되돌아 가는것을 찬성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환경이든지 유기적 연대에는 병리적 결과가 따르게 마련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적절한 처방를 찾아야 한다. 적절한 약의 배합cocktail of drugs을 통하여, 우리는 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 고 하였다. 이것이 뒤르켐의 아노미에 관한 중심 아이디어이다.

+ 병리 현상은 과잉 규제와 강제된 노동 분업에서 나온다.
보통, 규제과잉과 강제된 노동분업은 간과되어왔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보라, 사회적 병리현상은 과잉규제와 강제된 노동분업으로 인하여 초래되기도 한다." 고 하였다. 이것은 이미 <노동분업labour division in society>에 나와 있는 것이지만, 주요 출처는 <노동분업>의 제 2 서문second introduction 이다. 사실, 뒤르켐의 <노동분업> 첫 판은 정치적으로 너무 보수적이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때문에 뒤르켐은 두번째 판 제 2서문을 쓰게되었던 것이다. 정말 뒤르켐에 관심이 있다면 <노동분업> 제2판의 서문을 읽어라. 거기서 뒤르켐은 아노미 문제를 진보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또 유기적 연대사회로서 현대사회의 계급갈등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사실, 사회학자들은 뒤르켐의 주요 아이디어는 <노동분업>의 제 2판에 다 있다고 하면서 직업적으로 연대한다. 사회학자들은 직업적인 조직안에서 자신들의 정체성과 연대성을 확인한다. 뒤르켐에 따르면 선한사회good society란 직업적 조직이 다양하게 진화해나갈 때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직업적 환경에 적응하면서 강한 직업적 정체성과 연대적 자세를 갖추게 된다. 이것이 뒤르켐의 포인트이다. 재미있게도 이 아이디어는 매우 급진적이 되어버렸다. 보통, 직업조직은 시장에 다소 독립적이므로 시장을 혼란하게 하지않는다. 사실, 직업조직이 효과적이기만 한다면 시장과 함께 망가지지는 않는다. 재미있게도, 미국의료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는 망가졌다mess up. 왜냐하면 그 노동조합은 의사들의 이익을 편파적으로 과잉 대표했기 때문이다. 뒤르켐은 <노동분업> 제 2판에서 말하기를 "병리는 과잉규제 또는 강제된 노동분업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고 하였다. 한편 뒤르켐은 또 다른 개념인 운명론fatalism을 소개하였다. 현대사회에는 두가지 상이한 병리가 있다. 그 하나는 기계적 유대에서 유기적 유대로 이전하면서 초래되는 공통 가치의 부재, 즉 아노미가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그것과는 반대로 지나친 과잉규제이다. 사람들은 과잉규제로 인하여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운명주의fatalism에 빠지게 된다. 아노미란 당신이 "어떤 것도 가능하다. 나는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다."라고 말할때 가능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어떤 것도 불가능하다." 고 말할 때는 필사적이 된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스스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운명주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어떤 통제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일어난다. 자신이 지나치게 규제받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운명론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과잉규제되었으므로 자신이 할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때문에 어떤 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

3. 아노미, 소외, 그리고 탈마법 사이의 비교

맑스, 베버, 뒤르켐의 아이디어들을 비교해 보자. 뒤르켐은 결론적으로 "보라,  현대사회의 독특한 병리현상에 대한 나의 성과는 아노미 이론이다. 현대사회로의 이전과정에서 우리는 일시적으로 규범의 부재absence of rules에 직면하게된다. 그러나 이것은 곧 회복될 수 있다. 왜냐하면 적절하게 완화된 경쟁과 노동분업은 실제로 매우 높은 수준의 연대를 창조하지 못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뒤르켐이 <노동분업> 제 2판에서 소개한 기계론은 전문직업조직professional organization의 창출에 관한 것이었다. 사회는 사람들을 그러한 전문직업 공동체에 할당해야한다. 그 사람들은 촌락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직업적인 공동체 속에서 연대 아이디어와 정체성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전문직업조직이 아노미의 해결을 위한 일종의 결론이다. 뒤르켐은 맑스가 언급했던 계급투쟁과 착취 등의 문제에 민감했다. 뒤르켐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계급투쟁을 초래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근로계급은 자신들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근로계급은 자신들에게 할당된 지위에 불만족한다. 뒤르켐은 이것이 문제라고 하면서도 착취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뒤르켐은 노동의 과잉분업은 일종의 소외를 창조한다고 하였고 과도한 규제는 마음의 병리 상태인 운명주의를 창조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뒤르켐의 중대한 업적은 이미 언급하였듯이 사회의 불충분한 규제insufficient regulation, 즉 아노미이다. 아노미 이론은 뒤르켐의 독특한 업적이다. 이미 보았던 것처럼 맑스의 소외론은 뒤르켐의 운명론과 같은 것이다. 운명론은 과도한 규제로부터 나온다. 그럼, 뒤르켐의 아노미를 베버의 탈마법disenchantment 개념과 비교해보자. 마법의 성의 상실loss of the enchanted garden이란 다름아닌 현대적 상황아래 놓여있는 인간 조건의 느낌 또는 감정이다. 베버의 마법magic의 상실은 맑스의 소외론이나 뒤르켐의 아노미 이론과 동일시될 수 있다.. 마법의 상실이란 어떤 면에서 춤dance을 비롯한 모든 면의 관계들이 도구적 관계로 전환된 것이다. 실제로, 이것은 게오르크 루카치의 아이디어와 매우 유사하다. 루카치는 맑시스트로서 물화reification이론을 개발했다. 반면에 베버는 현대성의 문제점을 탈마법 이론으로 개발하였다. 베버에 따르면 우리는 마법의 성을 잃어버린 후로, 너무 이성적이고, 너무 냉정하고, 너무 도구적이 되어버렸다. 그때 루카치는 헤겔로부터 맑스로 전향하면서 물화이론을 개발하였다. 당시 베버와 루카치는 하이델베르크에 살고 있었는데 게오르크 루카치는 20대의 젊은이었다. 루카치는 베버의 집에 자주 방문했었다. 왜냐하면 마리안느 베버가 살롱을 운영하였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루카치는 소외을  독특하게도 인간관계의 물화로 해석하였다. 반면에 베버는 소외를 생활의 도구화instrumentalization of life로 개념화하였다. 이것들은 분명히 아노미나 소외와는 구별되는 것이댜.

4. 인간 본성에 관한 이론

뒤르켐은 인간본성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했을까. 맑스와 베버사이에는 명확한 구별이 있다. 맑스는 주로 루소의 라인을 따라가면서도 더이상 자연상태의 개념을 믿지않게되었다. 19세기 중반에 자연상태의 개념은 지루해졌고 끝내는 폐기되고 말았다. 맑스는 인간본질과 관련하여 종적인 존재species being란 용어를사용하였다. 맑스에 따르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좋은essentially fine 존재이다. 따라서 여러 문제들은 사회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개인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재미있게도, 이것은 맑스가 정확히 루소의 영감을 받은 것이다. 맑스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선했지만 사회에서 타락했다. 어떤 면에서 맑스는 루소를 넘어섰다. 왜냐하면 루소의 숭고한 야만인noble savage은 사회로 옮겨져서 양육되어야할 개인 야만인이기 때문이다. 맑스는 이 점에서 루소와 차이난다. 맑스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사회에서 태어났다. 그 이유는 우리 인간의 본성은 사회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선할 뿐만아니라 사회적이다. 우리를 타락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이고 또 우리을 서로 경쟁하도록 하고 서로 죽이도록 하는 것도 사회이다. 이러한 맑스의 인간 본성론은 홉스와는 정확히 정반대되는 것이고, 루소의 인간 본성론을 상당히 능가하는 것이다. 한편 뒤르켐의 인간 본성론은 실제로 홉스와 상당히 가깝다. 왜냐하면 뒤르켐은 사회 병리는 사람들에 대한 통제의 진공 상태로부터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통제가 아니될 때, 그때 바로 범죄, 자살, 매춘 등이 시작된다. 따라서 뒤르켐은 인간본성에 대하여 회의적skeptical 이었다. 뒤르켐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통제되지 않는한 악행evil을 저지를 수 있다. 이것이 뒤르켐의 인간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아이디어이다. 마지막으로, 뒤르켐은 사회에는 개인들 스스로 적절한 가치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참고문헌>

원문, 동영상
Szelenyi, Ivan. Founda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 Open Yale Course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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