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8일 목요일

11-3. 뒤르켐: 자살론

1.  자살의 정의

오늘의 주제는 자살이다. 실제로 자살은 학생들 사이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고있다. 이전에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교수가 죽음과 자살에 관한 강의를 위하여 초청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 교수의 강좌가 곧 폐강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러나 강의실은 꽉 찼다. 분명, 자살은 인기있는 토픽이었다. 나는 이제 그 이유를 알겠다. 내가 당신들 나이때 가끔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아마도 당신들 중에도 다수는 자살을 생각해 본적이 있었을 것이다.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왜 우리는 자살을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감행하지 않는지 그 답을 제시하였다. 왜 당신의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자살을 생각하는가. 아마 그들 중에 일부는 이미 자살을 시도했는지도 모르겠다. 또 일부는 실제로 자살을 했을 수도 있겠다. 오늘날 자살은 빅 이슈가 되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뒤르켐의 <자살론>은 여러 면에서 개척자적인path-breaking 책이다.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사회 현상과 관련하여 최초로 엄밀한 경험적 연구를 도입하였다. 보통, 자살은 매우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심리학자들은 자살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다. 반면에 사회학자들은 도대체 왜 자살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사실, 자살은 사회적으로 매우 드문 현상이다. 운좋게도, 대부분의 나라와 대부분의 사회에서 자살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자살은 매우 개인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왜 사회학자들이 자살을 해명하려 하는가. 사실, 뒤르켐은 매우 어려운 자살문제를 스스로 이슈화하였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학문화하였다. 앞으로 보겠지만, 뒤르켐은 상당히 멋진 방법론적 혁신innovation을 통하여 자살문제를 다룬다. 오늘날 많은 사회학자들은 <자살론>의 방법론적인 통찰력에 감탄한다. 재미있게도, <자살론>의 핵심은 방법론에 있다. 그럼, 자살이란 무엇인가. 자살은 어떤 죽음을 말하는 것이고 또 언제 결정되는가. 사회학자들은 무슨 이유로 자살을 연구하려 하는가. 이것이 뒤르켐 <자살론>의 포인트이겠다. 뒤르켐은 자살에 대한 여러 유형을 제시하였다. 오늘날 사회학자들은 뒤르켐의 자살 유형을 대체로 공감한다. 뒤르켐이 분류한 자살유형에는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운명론적 자살이 있다.

+ 자살이란
자살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자살은 특히, 통계와 관련하여 매우 미묘tricky하게 정의될 수 있다. 통계로 보고되는 자살을 살펴보자. 이를테면, 한 사람이 죽으면서 사람이 어떤 글도 남기지 않았다면 실제로 그 사람이 자살을 시도했는지 아니면 단순한 사고였는지 판단하기가 매우 힘들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명백히 밝혀질 때도 있다. 그(그녀)는 목을 메어 자살했을 수 있다. 목을 메는 것은 특별한 경우에 특정한 유형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방법이다. 자신을 목멘다는 것은 자살을 가리키는 지표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죽음의 원인을 조사하면서 그 자살 여부를 자주 혼동스러워한다. 이를테면, 당신은 수면제을 과잉 복용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우연히 정량 이상의 수면제를 복용했는지 아니면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는지는 명백하지 않다. 따라서 자살에 관한 통계조사 자료는 많은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의사들은 자살자의 사회적 환경에 기초하여 그 자살 여부를 판단한다. 그럼, 의사들은 뒤르켐을 알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사회학자들을 알고 있는가. 의사들은 어떤 근거에서 자살자가 그런 환경아래서 그런 자살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가. 이를테면, 의사들은 현장에서, 죽은자의 생활환경을 유추하면서 말하기를 "이 노인의 부인은 최근에 타계했으므로 이 노인은 분명 자살했음에 틀림없다." 고 하는가. 실제로, 자살의 정의는 의학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환경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그러면 무엇이 자살인가에 대하여 조금 더 살펴보자. 자살은 어떠한 환경아래서의 죽음을 말하는가. 여기, 뒤르켐의 정의가 있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자살이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긍정 또는 부정적 행위을 통하여 초래되는 죽음으로서, 희생자 스스로 그러한 자살의 결과를 인식한 모든 죽음에 해당될 수 있다." 고 하였다. 이것은 매우 복잡한 개념처럼 보이지만 매우 정곡을 찌르는 좋은 개념이다.

+ 자살에는 의도intention가 필요하다.
먼저, 주목할 점은 자살의도이다. 죽음이 자살이라고 부를 수 있기 위해서는 자살자가 스스로 자신을 위한 의도가 있어야한다. 이 의도는 다양할 수 있다. 자살의도의 목적은 반드시 자기-파괴적일 필요는 없다. 그 목적aim은 어떤 것이어도 상관없다. 예를들어서, 자살 폭파범suicide bomber를 생각해 보라. 자살 폭파범은 원래 자신들을 죽이고자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은 타인들을 죽이기 위하여 자기들의 육체를 무기로서 이용하는 것이다. 자살 폭파범은 타인들을 해치기 위하여 자신의 육체를 폭파시킨다. 이것은 분명히 자살에 해당하는 경우이다. 왜냐하면 자살 폭파범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하여 스스로 자기가 죽을 것임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살 폭파범은 그 자신을 목표로하지는 않지만 자살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 자살은 간접적이고 부정적일 수 있다
자살행동은 간접적일 수 있다. 사실, 자살은 부정적negative일 수 있다. 대부분의 자살은 직접적이고 긍정적인 행동이다. 즉, 당신은 50층 위에서 직접 뛰어내려서 자신을 죽일 수 있다. 당신은 수면제를 과잉 복용하여 자신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자살은 간접적이고 부정적일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을 굶주려서 죽일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을 죽이려고 의도하는 한 그것은 자살이라고 불릴 수 있다. 따라서 자살의 정의는 매우 기교적tricky인 것이다. 약물을 남용하거나 알콜을 남용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그들은 실제로 약물 과잉이나 알콜 과잉으로 죽을 수 있다. 그들이 스스로 죽을려고 의도한 바가 아닌 술을 좋아하거나boozing 코캐인 애용으로 죽었다면 그것은 자살이 아니다. 지난 35년간 많은 러시아인들이 사망하였다. 특히, 러시아의 중년 남성들은 파리처럼 죽어나갔는데 그 이유는 보드카 과음이었다. 그러한 경우, 대부분은 자살이 아니다. 그들은 우울했고depressed, 어리석었다silly. 그들은 보드카가 우울감을 해소하는 데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결과 간암으로 사망하였다. 따라서 그러한 죽음은 자살이 아니다. 당신이 방문을 잠그고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하기 위하여 보드카 한 병을 마신다면 그것은 자살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인식했기 때문이다. 자살로 인정되기위해서는 당신 스스로 자신을 죽이겠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의 자살 개념의 포인트이다. 알다시피, <자살론>은 사회학자들에게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자살론>은 죽음의 원인을 결정내리는 의학 조사팀에 대한 대단한 도전이었다. 자살자의 자살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자살의 경우, 그 의도는 확실하게 파악될 수 없다. 사망자가 자살을 의도한다는 글을 남겨놓지 않는한, 그 죽음이 단순한 사고에 의한 것인지, 의도된 것인지를 파악하기란 대단히 힘들다.

+자살은 개인적 행위인가, 사회적 현상인가.
자살은 매우 사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살하겠다는 말을 한다. 그들은 보통 그런 말을 하면서도 실제로 자살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보통, 자살자는 자살을 진지하게 내부화하면서 그것을 자신 내부에 고이 간직한채로 자신을 죽인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나는 자살할 것 같다."라고 할 때, 그것은 단지 타인의 관심을 받고자하는 것일 뿐이다. 심지어 그들이 자살을 시도할지라도 그것은 자주 거짓으로 드러난다. 그들은 너무도 영악해서 단지 수면제를 조금 더 사용했을 뿐이겠다. 재미있게도, 그들은 이미 자살을 결심했다고 말했던 터였으므로 친구들은 헐레벌떡 병원으로 달려와주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자살은 매우 개인적인 행위이다. 당신은 자살을 하겠다는 의도를 숨기는 것이 보통이고 타인들과 자살에 대하여 대화하지 않는다. 당신이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죽이는 것은 개인적인 일처럼 보인다. 도대체 왜 사회학자들은 이렇게 개인적인 일 또는 사적 행위로 보이는 자살에 대하여 대단한 관심을 갖는 것일까.

+ 자살률은 나라마다 대단히 다양하다.
뒤르켐은 말하기를 "보라, 자살률이 나라마다 얼마나 다른가.'' 라고 하였다. 뒤르켐은 나라마다 자살율이 엄청난 차이가 난다고 주장하였다. 어떤 나라들은 자살율이 매우 낮고 또 어떤 다른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자살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죽음의 제 1순위는 아니다. 그러나 몇몇 나라의 특정한 나이 그룹에서, 자살은 죽음의 원인으로서 쉽게 톱 5 안에 들어간다. 덧붙여서, 그런 나라에서 자살은 보통 오랜동안 그런 관행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매우 안정적인 지표indicator일 수 있다. 대개 스칸디나비아의 여러 나라들은 자살률이 매우 높은 편이다. 나의 조국인 헝가리는 오랫동안 자살 제 1순위였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자살 연구는 뒤르켐의 영감을 빌리고 있다. 오늘날 뒤르켐은 많은 도전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110년이 지난 지금도 자살 연구에 관한 어젠다 설정자agenda-setter이다. 만약, 당신이 생물학자나 사회학자 또는 의사가 된다면 자살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분명 뒤르켐을 배우게 될 것이다. 자살 연구는 뒤르켐 없이는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서, 뒤르켐의 영감을 받은 사람들은 나라 곳곳의 자살을 살피게 된다. 재미있게도, 자살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마다 대단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어떤 지역의 자살율은 매우 높고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낮다. 이러한 사실은 매우 일정하다constant. 현재, 헝가리는 자살율에 있어서 셰계 2위 또는 3위이다. 헝가리는 이전 한 세기 동안 자살율 세계 1위를 유지해 왔었다. 나는 뒤르켐의 영감을 받고 자살을 연구하는 헝가리의 한 동료가 있다. 그는 헝가리의 한 지역의 자살율이 특히 높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실제로 자살하는 자들의 유형과 자살방법 사이의 관계를 밝혀냈다. 그 통계는 한 세기 동안 거의 불변하였다. 그에 따르면 격리된 농장detached farms에 살고 있는 나이 든 남성농부들은, 부인들이 갑자기 사망하면(여성은 보통 남성보다 더 오래 산다.) 전형적으로 한결같이 다락에 들어가 목을 멘다. 이러한 행동은 오랜동안 이어져 왔다고 한다. 이제 격리된 농장에 사는 남성노인은 자신의 부인이 죽으면 다락으로 가서 목을 멘다는 것은 공식이 되었다. 어떤 면에서 자살은 죽음에 이르는 한 방법a way of dying이다. 확실히, 자살 문제는 특정한 사회의 특정한 환경과 관련되어있다. 사실, 우리 남자들은 꽤 바보같은 면이 있는데, 우리는 요리할 줄도 모르고, 어떻게 꾸며야 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나이가 들어서 당신의 부인이 죽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은 특정한 상황에서 자살을 저지를 수 있다. 재미있게도, 사회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이 자살하는 방법에는 사회적 패턴pattern과 문화적 패턴이 있다고 한다. 뒤르켐에 따르면 거대하고 놀라운 역사적 이벤트는 자살율에 상당한 영향를 끼친다고 한다. 그럼, 거대한 사회적 혼란turmoil이 발생하면 자살률이 상승할 것인가. 당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틀렸다. 거대한 사회적 혼란이 발생하면 자살율은 오히려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혁명의 시기에 사람들은 자살하지 않는다. 어쨌든 뒤르켐의 포인트는 자살은 집단적인 현상collective phenomenon이라는 데 있었다. 자살은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 자살의 유형
그럼, 자살 유형을 살펴보자. 뒤르켐의 자살 유형론은 다소 어렵다. 뒤르켐은 자살의 원인를 통합integration과 규제regulation의 문제로 구별했다. 통합이란 당신이 살고 있는 조직 또는 사회가 얼마나 밀도있게 조직되었는가를 말해준다. 이미 언급했듯이, 뒤르켐은 정상 대 병리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재미있게도, 뒤르켐은 정상normal이란 전형적인typical인 것이라고 말하였다. 쉽게 말해서, 정상이란 일종의 평균average이다. 정상이 너무 지나치거나 너무 부족하면 병리적이거나 비정상이다. 이것이 뒤르켐의 근본적인 아이디어이다. 따라서 뒤르켐 유형론typology의 한 차원은 통합이다. 우리는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적 그룹에 얼마나 잘 통합되었는가. 그것은 너무 높을 수도 있고 너무 낮을 수도 있다. 너무 높은 통합과 너무 낮은 통합은 사회적 병리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병리현상 중의 하나는 당신이 스스로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뒤르켐 유형론의 또다른 한 차원은 규제regulation이다. 규제란 여러 기준들이 엄밀하게 사람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것을 말한다. 그 기준은 너무 높거나 또는 너무 낮을 수 있다. 따라서 규제 또한 병리현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뒤르켐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개인으로 하여금 황금중도golden middle road로부터 일탈하게 한다. 이를테면, 당신은 황금중도의 궤도 위에서만 정상이 되는 것이고 그 궤도에서 일탈하면 비정상이 되는 것이다. 이 뒤르켐의 가설은 매우 문제가 되는 것으로서 많은 도전을 받고있다. 그럼, 이 두가지 차원, 즉 통합과 규제는 서로 독립되어있는가 아니면 복합되어있는가. 통합과 규제는 서로 완전히 독립되어있지는 않다. 따라서 통합과 규제를 2x2 식table으로 완전히 갈라놓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몇몇 비정상의 유형은 통합과 규제의 복합을 통하여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통합과 규제, 두가지 차원을 복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2x2식 보다는 훨씬 나은 최선의 방법이라고 보겠다. 통합과 규제는 좌우로, 높고 낮음은 상하로 도식화될 수 있다. 이렇게 개념화 한 것은 보통의 2x2식과는 다른 것이다.

2. 첫째, 이기적 자살

이기적 자살은 사회 통합과 관련이 있다. 이기적 자살은 사회적 통합이 너무 낮을때 발생한다. 뒤르켐에 따르면 자살 의도자들이 속해있는 있는 그룹의 통합력이 약화되었을때 그 사람은 그 그룹에 덜 의존하게 된다. 뒤르켐은 이것을 이기주의egoism라고 불렀다. 당신은 자신이 속한 그룹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할 때 이기적 자살을 저지르게 된다. 즉, 자살을 고려하는 자들은 이타주의가 결핍되고 그룹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당신은 자살을 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당신은 말하기를 "나는 이제 인생의 목적이 없다. 나의 남자친구(여자친구)가 떠나갔다. 따라서 나는 죽는 게 낫다." 라고 한다. 그리고나서 말하기를 "나는 정말이지 엄마 때문에 자살을 못하겠다. 정말이지. 내 부모님을 실망시킬 수 없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없게 되었다. 그룹 안에서의 친밀성tightness, 즉 그룹 연대성은 당신을 자살로부터 보호해준다. 따라서 당신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오직 당신 자신만을 배려한다는 의미이다. 그룹 연대는 다양할 수 있다. 그 연대는 종교일수 있고 가족일 수도 있고 그리고 그 연대는 정치 사회일 수도 었다.  종교적, 가족적, 사회적 연대는 당신을 자살로부터 보호할 것이다.

+ 종교
자살은 종교와 관련이 있는가. 자살은 종교와 교육에 얼마나 연관되는가. 뒤르켐은 정말이지 자살연구에 관한 돌파구를 마련하였다. 당시 통계학적인 기술이 개발되지는 못했음에도 뒤르켐은 통계분석을 다중변수로서 논리화multivariate statistical analysis하였다. 뒤르켐은 숫자가 없는 회귀모델regression model을 사용하였다. 그것이 뒤르켐의 논증논리였다. 뒤르켐은 자살과 관련하여 유대인들만은 예외라고 언급하였다. 재미있게도, 자살에 관한 뒤르켐의 근본적인 아이디어는 사실, 일반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은 자들이 자살율이 높다는 것이다. 또 자살과 종교 사이에는 일련의 관계가 있다. 개신교도들은 자살율이 높은 경향이 있다. 캐돌릭교도들은 자살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향이 있다. 캐돌릭교도들은 교육수준이 낮고, 개신교도들은  교육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 개신교도들의 높은 교육수준은 자살을 저지르기가 더 쉽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뒤르켐은 유대인들은 예외라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유대인 자살율은 매우 낮은 편이고 교육 수준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대인 수수께끼이다. 도대체 왜 교육수준이 높은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죽이지 않는가. 당신이 루터교도나 장로교도이면서 교육을 받았다면 당신은 자살을 저지르게 된다. 그런데 왜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이것이 수수께끼이다. 자살은 교육 또는 종교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 도대체 왜 교육은 높은 자살율을 초래하는가.

+ 종교와 자살
이미 지적했다시피, 뒤르켐은 개신교도들 사이의 높은 자살율을 발견하였다. 캐돌릭교도들은 자살율이 낮았고 유대인들은 가장 낮았다. 뒤르켐이 유럽국가들을 관찰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다. 사실, 이슬람교도들은 자살율이 가장 낮다. 재미있게도, 캐돌릭교도들은 교리상 자살을 저지르면 벌을 받는다. 그러나 뒤르켐은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모든 종교는 자살을 반대한다. 어떤 종교도 자살을 허락하지 않늗다. 로만캐돌릭이 자살에 대하여 조금 더 엄격한지도 모르겠다. 왜나햐면 자살자들은 보통 종교적 의례로서 장례에 따라 매장되는 복을 누리지 못한다. 대부분의 로만캐돌릭 신부들은 자살자들을 매장하려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에, 개신교 성직자들은 매장 의례를 거행한다. 재미있게도, 당신이 자살을 저지른다면 자신이 어디에 매장되고 또 어떻게 매장될지는 큰 관심거리가 아니겠다. 문제는 종교인들이 왜 자살을 저지르는가에 있겠다. 먼저, 한 종교인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자살 금지율는 타 종교의 그것보다 더 설득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자살을 저지를 수 있다. 사실, 모든 종교는 자살을 금지하고는 있다. 뒤르켐은 여기서 통합의 아이디어를 추론하게 되었다. 뒤르켐에 따르면 개신교회는 캐돌릭교회보다 훨씬 덜 통합되어있는 공동체이다. 반면에 유대교는 실제로 가장 밀도있게 통합되어있는 공동체이다. 따라서 유대교인은 이기적인 자살을 저질를 여지가 거의 없다고 본 것이다. 왜냐하면 높은 수준의 통합 때문에 그렇다. 통합 수준은 개신교도들 사이에 낮고, 캐돌릭교도 사이에 높고, 유대교인들 사이에 특히 높다.

+ 집단양심, 교육과 자살
도대체 어떻게 교육이 자살의 원인이 될 수 있는가. 뒤르켐은 공통적이고 관습적인 편견common and customary prejudice이 약해지게되면 자살유행은 증가하게 된다고 말하였다. 뒤르켐이 가리키는 편견이란 우리가 편의상 말하는 그 용어의 의미가 아니다. 뒤르켐이 기리키는 편견은 교육을 통하여 과잉생성된overcome with education 지식을 말한다. 당신은 점점 더 많은 교육을 받게 됨에 따라서 당신은 점점 덜 독단적doctrine이 되어간다. 교육이란 비판하는 훈련이다. 이 비판훈련은 바로 내가 이 강좌에서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당신들이 비판이론가가 되어서 자신의 의식을 비판의 도마에 올려놓아주기를 바란다. 때문에 당신들은 어려운 시험 문제를 비판이론가들의 비판으로서 풀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교육에 관한 모든 것이다. 따라서 독단으로서의 편견은 쇠퇴하고 있다. 일단, 독단dogma이 줄어들게 되면 이제까지 믿어왔던 고정관념stereotypes도 줄어들게 되면서 우리는 좀더 자살을 저지르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집단양심이 약화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교육은 점점 더 개인의 의식을 향하게 되고 또 비판적 사상가는 개인의 의식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갖게된다. 뒤르켐에 따르면 교육은 종교와 함께 나아간다고 하였다. 캐돌릭 신자들은 덜 교육받는 경향이 있고 개신교도들은 더 많은 교육을 받는 경향이 있다. 그럼, 이러한 사실은 믿을만 한가. 사실, 개신교 교회들은 전통적으로 교육을 대단히 강조해왔다. 개신교 신자들과 그 성직자와의 관계는 독특하다. 고전적인 캐돌릭 신학에 따르면 성직자들은 신자들을 위하여 성경을 해석하는 것으로 그쳤다. 그러나 종교개혁Reformation의 대혁명으로 인하여 성경은 각 나라의 자국어native languages로 번역되였다. 그 성경은 막 등장한 인쇄기술을 이용하여 대량 출판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개신교 성직자들은 신도들이 성경 읽기를 장려하게 되었다. 반면에, 중세의 로만캐돌릭 교회에서는 오직 사제들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었다. 반면에 개신교회는 대중교육과 함께 나아가면서 읽고 쓰는 교육으로 계몽하였다. 따라서 개신교도들이 캐돌릭교들도보다 많은 교육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종교적 차이는 교육 수준의 큰 변수가 되지 못하고있다. 어떤 면에서 종교와 교육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공유관계correlation라고 보겠다. 또 뒤르켐에 따르면 진보된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덜 교육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완전히 사실이 아니다. 미국을 포함한 서양의 선진국에서는 여성들은 실제로 남성들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고 있다. 남성들은 이제 여성들을 따라잡기 위하여 더 열심히 일해야 할 지경이댜. 왜냐하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고있기 때문이다. 당시 뒤르켐이 살던 시대에는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덜 교육받았고 또 자살을 덜 저지르는 경향이 있었다. 오늘날도 여전이 그러한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자살을 덜저지르는 경향이 있다. 사실, 여성들은 자살을 더 많이 시도하지만, 자살율은 여성들보다 남성들 사이에서 훨씬 더 높다. 이것이 기본적인 포인트이다. 여성과 남성은 종교, 즉 개신교와 캐돌릭에 따라서 자살율에 차이가 나는가. 그것은 오늘날 의심스럽지만, 확실히 여성에게는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서양 선진국에서는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훨씬 더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세대의 여성들은 훨씬 더 많은 교육을 받았다. 재미있게도, 뒤르켐은 방법론적으로 다변수multivariate 분석을 시작하였다. 뒤르켐은 자살의 경향을 종속변수dependent variable로 두면서 일종의 회귀모델regression model을 이용하였다. 뒤르켐은 국가, 성gender, 교육, 종교 등을 회귀모델화하여 자살율의 변수로 설정하였다. 이것은 매우 멋진 연구계획이었고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사회과학이 되었다. 그럼, 유대인 수수께끼를 살펴보자. 실제로,유대인은 여전히 비유대인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확실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유대인의 종교와 교육에 관한 자료들을 살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뒤르켐이 <자살론>을 쓰고 있던 19세기 후반기에, 유대인들은 확실히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있었다. 유대인들은 특히 유럽에서 대단히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또 1920년대와 30년대의 미국의 유대인들도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다. 유대인들은 많은 교육을 받았음에도 자살은 덜 저지르는 경향이 있었다. 따라서 뒤르켐의 설명 모델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제 뒤르켐은 배움의 목적에 대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배움의 목적은 비유대인들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에 뒤르켐의 포인트가 있다. 뒤르켐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집단편견을 모면하기 위하여 배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투쟁을 위한 더 나은 무기로서 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탈무드와 성경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랍비를 찾아가고 온갖 교육을 다 받는다. 또 유대인들은 미쓰바mitzvah를 위하여 매우 많은 교육을 받는다. 유대인들은 미쓰바를 통과하기 위하여 피땀흘리면서 헤브루어를 공부한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은 독단doctrine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단에서 자유로운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집단양심을 훼손하지 않는다. 교육은 유대인들의 집단양심을 강화시키고 있다. 이것이 뒤르켐의 포인트이다. 매우 재미있게도, 뒤르켐은 그러한 사실을 방법론적으로 정립하였던 것이다. 뒤르켐이 1897년에 개발한 이 방법론은 오늘날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박사과정의 학생들이 준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당신은 연구 계힉을 방법론에 의거하여 증명하여야만 지도교수는 좋아할 것이다. 뒤르켐에게 교육은 매우 재미있는 아이디어였으므로 교육과 종교사이의 상호작용 효과interaction effect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교육과 종교는 서로 영향을 끼친다. 뒤르켐은 모든 것은 교육에 달려 있다고 하였다. 교육이 집단양심을 약화시킨다면 당신은 스스로 배우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비판적이 될 것이며 교육은 자실의 원인이 될 것이다. 반면에 교육이 집단양심을 강화한다면 교육은 사회 통합의 중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 가족과 자살
실제로, 당신이 가족 안에서 통합되어있다면 당신은 덜 자살을 저지를 것이다. 뒤르켐에 따르면 기혼자는 미혼자나 과부widowed에 비하여 자살을 덜 저지른다는 증거가 있다. 실제로 그렇다.  일반적으로 결혼은 건강한 혜택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당신이 결혼을 포기했다면 자신의 건강을 생각해보라. 통계에 따르면, 결혼을 하면 당신은 더 오래 살게된다. 또 당신은 혼자 지낼 때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다. 더군다나, 당신은 덜 자살을 저지를 것이다. 뒤르켐은 이것을 가리켜 자살에 대한 결혼면역matrimonial immunity이라고 불렀다. 왜 그런가.  매우 놀랍게도, 뒤르켐은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당신이 공동체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당신은 공동체 내에서 자살을 저지르지 않는다. 이를테면 당신은 말하기를 "나는 나의 부인spouse에게 나를 죽여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의 부인은 내 죽음으로 인하여 비난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부인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다." 라고 말한다. 따라서 당신은 자살을 저지르지 않게 된다. 젊은이들은 주로 부모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자살을 포기한다.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뒤르켐은 자살은 결혼을 통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자살에 더 노출될 수 있는 사람들은 먼저 결혼하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이 만약 통계학을 수강하고 있다면 뒤르켐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 자살은 통게학의 범주안에 있지는 않았다. 오늘날 통계학에서는 이것을 선택문제selection problem라고 말한다. 자살은 확실히 선택문제이다. 뒤르켐은 왜 결혼한 사람들이 자살을 덜 저지르는지 알 수 없다고도 하였다. 왜냐하면 정말로 자살의 의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을 가능성이 컷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먼저 외로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기혼자들 사이의 낮은 자살율은 결혼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결혼이 자살을 방지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가져다 준 결과라고 보는 것이 낫겠다. 이것이 고전적인  '선택문제'의 예이다. 선택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실험방법론Experimental method에 있다. 실험은 선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당신이 정치학과의 그린Green교수의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면 내가 말하는 바를 정확히 알 것이다. 사회과학자들은 정말이지 실험을 해야한다. 그 실험은 무작위로 행해져야한다. 당신은 무작위로 사람들에게 결혼하게하거나 결혼하지 않게하고, 그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서 표본선택편향sample selection bias의 문제를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사회에서 무작위로 실험할 수 없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결혼을 강제로 하라거나, 말라거나 할 수 없고 또한 30년 후에 그들이 살아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제이다. 통계학자들의 통계 보고는 문제해결을 더 어렵게 할 수도 있으므로 유일한 해결책은 오로지 실헙 방법밖에 없다. 뒤르켐은 실험에 관한한 매우 앞서있다. 표본선택은 실험을 통하여 통계in statistics가 나온다. 뒤르켐은 1897년 당시 표본선택모델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는데 1980년대에도 큰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통계적 문제가 아니라 연구계획적 문제였다. 실제로, 뒤르켐은 표본선택모델로서 가산제matrimonialism가 가장 적절하다고 주장하였다.

+ 정치적 사회와 자살
자살과 사회와의 관계도 똑같이 반-직관적이다. 뒤르켐은 사회적 대격변이 발생하면 실제로 사회적 감정social sentiments이 상승한다고 하였다. 혁명기를 생각해보라. 당신은 스스로 자신과 조국을 동일시하게되므로 자살할 수가 없다. 역설적으로, 혁명이 없었다면 당신은 자살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대혼란기에는 자살율은 내려갈 것이다. 어쨌든 이것은 이기적인 자살에 관한 것이다.

3. 둘째, 이타적 자살altruistic suicide

이타적인 자살은 사회통합이 매우 높을 때 발생한다. 그때 사람들은 이타적 자살을 저지르게 된다. 예를들어, 나이든 노인들은 자살을 저지른다. 할머니들은 자기 남편이 죽으면 자살을 저지른다. 왜냐하면 그 자살이 남편이 바라는 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추종자들과 노비servants들은 우두머리가 죽으면 자살을 저질렀다. 이것이 이타적인 자살의 포인트이다. 사람들이 이타적인 자살을 저지르는 이유는 자신을 죽이는 것이 자신의 의무duty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타적인 자살은 사회가 사람들에게 사회적 희생을 부과할 때 일어난다. 또한, 이타적 자살은 특정한 사회에서 강제obligatory될 수 있다. 이를테면, 당신은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당신이 일본 군인이라면 하리끼리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인 장군들은 하리끼리를 저질렀다. 또 이타적인 자살은 일종의 신비적인mystical 자살일 수 있다. 알다시피, 힌두교도Hindus들은 때때로 갠지스강에 몸을 던져서 자살을 저지른다. 뒤르켐에 따르면 오늘날 이타적 자살은 상대적으로 매우 드물지만 군대에서도 일어난다. 군인들은 자신들을 죽일 때가 있다. 그 이유는 군인들이 충분히 통합되어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이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인들은 개인주의가 약화되었을 때 이타적 자살을 저지르게 된다.

4. 세째, 아노미적 자살anomic suicide

알다시피, 아노미란 사회 규제의 부재lack of social regulation 이다. 뒤르켐에 따르면 가치시스템이 항상 변하는 상황에서는 사람들은 정말로 더 자살을 저지르게 된다. 이것이 아노미적 자살의 포인트이다. 또 경제적인 어려움은 아노미적 자살의 원인일 수 있다. 대공황기Great Depression에 은행들은 자주 붕괴되었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창 밖으로 뛰어 내렸다. 실제로, 지난 가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주식시장이 하향세였을 때였다. 또 내부적domestic 아노미가 있을 수 있다. 아내가 죽었거나 이혼당했을 때 아노미적 자살은 빈번해 질 수 있다.

5. 넷째, 운명론적 자살

마지막으로, 운명론적 자살이 있다. 이미 지적했다시피, 뒤르켐의 운명론 개념은 맑스의 소외개념과 쌍벽을 이룬다. 너무 심한 규제와 그 반면에 충분치 못한 사회적 통합은 운명적 자살을 초래할 수 있다. 노예들이나 자식이 없는 여성들이 운명적 자살을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






<참고문헌>

원문, 동영상
Szelenyi, Ivan, Foundations of Modern Social Thought, Open Yale Course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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